Tracing the Expansion of Korean Counter-espionage Police in the 1980s
Hyukeun Kwon · Journal of Memory & Vision · 2023
경찰 내 분실 조직은 정부수립기부터 존재했다. 4월 혁명과 5·16쿠데타 이후 경찰의 사찰과가 정보과로 개편되고 그 구성이 서무를 담당하는 1계, 정보업무를 담당하는 2계, 대공업무를 담당하는 3계로 확정되면서 분실은 3계 산하에 위치했으며 ‘공작분실’이라고 불렸다. 1975년 사회안전법 제정, 1976년 3계의 정보2과로의 독립은 분실 운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기존까지 남산에 모여 있던 치안본부, 서울시경 등의 분실은 대공부서의 독립 이후 남영동, 옥인동 등으로 이전하고 이름도 ‘대공분실’로 개칭했다.한편, 5·18민주화항쟁 이후 학생운동이 급진화됨에 따라 전두환 정권은 대공분실 내에 학생운동을 담당하는 좌경의식화분실을 설치했다. 이후 좌경의식화분실은 대공분실과 합쳐져 대공수사단으로 개편되었으며 1980년대 대공경찰의 확대를 이끌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6월항쟁이 발생하자 치안본부는 대공부서를 대공분실과 공안분실로 나누고 대공분실을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것은 1986년 말 대공분실 축소가 아닌 확대를 위해 이미 만들어진 방침이었으며, 공안분실의 설치가 대공분실 축소를 위한 것이라는 발표는 눈 가리고 아웅에 다름 아니었다.